충무공손 이두영화백(초대디지탈아트협회 회장)께서 평생동안 만드신 많은작품들을  JPG file 로 보관중인데 관심있는 종인들에게는 무료로(인쇄는 필요하신분이 출력할것)제공..

   
 
 
구 분
행사
제 목
이 충무공 역사왜곡에 대한 기자회견

요즈음 일부언론 과 socilal community 에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이 충무공에 대한 허위글이 일파 만파 유포된 사태에 대하여 충무공의 후손으로 충무공을 모독하고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심각한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수 없기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관련 언론사에 정정보도및 사과를 요청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이갑열 대종회장,이명수국회의원,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 과 많은 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0년 7월21일(수)11:00 에 국회소통회관에서  국회 출입기자단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은 충무공 종회 이종천회장이 성명서를 낭독한후 노승석 교수의 난중일기 해설과 이명수의원의 배경설명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향후 종회의 이에 대한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필요하다면 종회 차원에서 사자의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대응도 검토할수 있다고 답변하였으며 
성명서 전문은 아래와 같다.

성 명 서

 

발표자 :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장 이종천.

참석자 : 덕수이씨 대종회장 이갑열, 이명수 국회의원.

학술자문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난중일기 교감완역본 저자)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덕수이씨대종회와 충무공파 종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겠습니다.

 

1. 저는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을 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한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장 이종천입니다. 여기에는 덕수이씨대종회 이갑열회장님 그리고 이번 허위내용 유포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크게 애써주신 미래통합당 아산지구 이명수 의원님과 난중일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시 자문을 맡았던 난중일기전문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최근 각종 언론과 인터넷매체에서 이순신장군도 관노와 잠자리를 했다는 허위 글이 이슈화 되어 일파만파 유포된 사태에 대하여 충무공의 후손으로서 충무공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심각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기에,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자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최근 충무공전문가의 분석내용에 의하면, 위 글은 난중일기에 전혀 나오지 않는 잘못 조작된 허위 글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처음 게시한 사람은 물론, 이 글이 사실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인용하여 기사를 쓴 기자분들도 책임이 있다 하겠습니다. 언론의 생명이 공정성인데 허위사실을 보도해놓고 자신은 인용만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공정한 보도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2. ‘관노(官奴)’와 관련한 글은 난중일기정유년(1597) 421일자에 1곳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저녁에 여산 관노(남자종)의 집에서 잤다. 한밤중에 홀로 앉았으니, 비통한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夕宿于礪山官奴家, 中夜獨坐, 悲慟何堪! 悲慟何堪!]”(정유년 421, 교감완역 난중일기)

 

이 내용은 충무공께서 모친 상()을 당한 상제의 몸으로 합천으로 백의종군하러 가는 중에 여산(礪山) 관아(익산 여산면 소재)의 관노(官奴, 남자 종) 집에서 하룻밤 유숙할 때 적은 일기로, 이때 매우 비통한 심정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인과 잠자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주자가례삼년상(三年喪)조의 남녀가 방을 달리 한다[男女異室]”는 내용과도 맞지 않습니다.

 

위의 관노관련 글은 난중일기는 물론 다른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조작된 가짜 글입니다. 그런데 타인이 충무공과 여인 관련하여 쓴 글자는 가까울 근[]’자이고,(충무공전서) 충무공께서 타인이 여성과의 관계함에 대해 언급한 글자는 간음할 간()”자와 사통할 사()자로 확인됩니다.(난중일기)

 

士族處女奪奸金愛南幷斬梟.(정유 10, 30)

多言元兇之事, 又言其率來書吏, 以貿穀爲名, 送于陸地, 其妻, 而其者揚惡不從, 出外高聲(정유 5, 8)

 

 

3. 충무공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내용을 보면,

 

택당 이식과 잠곡 김육선생은,“충무공의 청렴한 삶을 일개무소사(一介無所私), 지푸라기 한 개도 사사로이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함.

이항복과 윤휴, 최유해선생은,“이순신이 군영에 있었던 7년동안 (심신을 곤고히 하여)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함.

조카 이분(李芬),“진영에 있을 때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겨우 4시간 자고서 새벽까지 작전을 모의했다.”고 함.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현재 유포된 글은 전혀 사실무근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지방 관리가 근무하는 () 이하는 노() 2, () 3명을 둔다고 했으니, 관아에 뒷바라지는 하는 노비를 두는 것은 법에 규정된 일입니다. 충무공이 근무한 관아에 여자종들을 둔 것도 역시 법에 규정된 일인데, 이런 사실만을 가지고 잠자리 운운하는 것은 조선 시대의 제도를 전혀 모르는 몰지각한 발언입니다.

 

 

4. 노승석 소장에 의하면, 충무공은 7년동안 많은 지인들을 만났는데, 이때 만남의 표시로 함께할 공()”자로 기록하셨습니다. 난중일기함께 공()로 기록된 사례는 모두 72건이고, 주로 아무개가 와서 만나다[來共]”, “함께 앉아서 담론하다[共坐談論]”, “함께하다[]” 등입니다.

 

예를 들면, 여자종() 이름 뒤에 공()자를 쓴 예가 있는데, 이 역시 충무공께서 평소에 일상적인 만남을 뜻하는 관용적인 표기일 뿐 잠자리의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개여지공(介與之共) (병신3, 9) : 개와 더불어 함께 했다.

여진공(女眞共)(병신 9, 14) : 여진과 함께 했다.(교감(校勘))

여진공(女眞共)(병신 9, 15) : 여진과 함께 했다.(교감(校勘))

-노승석,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박사논문, <우리한문학회 논문>(2009) -

 

여진공(女眞共)의 공()자는 본래 1935년 일본인이 스물 ()”서른 삽()”으로 오독했는데, 이로 인해 큰 오해가 발생했습니다.

 

여진(女眞) 명칭 뒤에 숫자(20, 30)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자의 용례를 볼 때,‘스물 입[]’, ‘서른 삽[]’자는 공()을 오독한 글자이다. (역래공(亦來共)(병신7,5)의 공()과 여진공의 공() 일치)

노소장이 위 두 내용을 근거로 새로 해독한 함께 공()’자에 대해서는 다수의 학자들 간에는 이견이 없는데, 간혹 여진입,’ ‘여진삽을 명칭 그대로 써야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일본인의 오독을 답습한 잘못된 해석이므로 반드시 교감(校勘)해야 한다고 합니다.(학자들 의견)

 

이상의 내용으로 관기와의 잠자리얘기는 잘못된 허구이고, “여진입, 여진삽은 오독이 분명함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아 잘못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컨대 충무공의 업적은 세계역사상 그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전대미문한 것이라고 이미 2013년에 평가를 받아 난중일기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충무공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위기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인물이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백절불굴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허위보도로 인해 충무공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고 후손들은 뼈절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많은 기자님들과 메스미디어의 관계자분여러분,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훌륭한 우리선조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후손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더는 없도록 협조해주실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발표는 이만 마치고 충무공 문헌에 대한 설명 및 질의응답은 난중일기 전문가인 노승석 소장님이 해주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721

              덕수이씨 대종회 ,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

            
                 
성명서 낭독하는 충무공파 종천회장   


 



제131호 덕수이씨 종보 발간
다음글이 없습니다.